덤으로 사는 세상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배회하거나 시간을 때워야 할 때라면
   무엇을 할까라는 가벼운 고민까지 한 번에 해결해줍니다.
   
   얼마 전 주말 홍대 앞에서 그런 즐거움과 마주쳤습니다.
   공연에 집중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 부담없이 자리를 떠도 됩니다.
   음료수나 먹을 것을 지참해도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제지당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공짜입니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퍼포먼스는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합니다.
   보여주는 이는 뭔가를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덜 할 것이고
   보는 이는 어차피 무료니 본전에 대한 기대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간에 부담이 없습니다.
   잘해야 본전이 아니라 최소한 본전이라는 얘기지요.
   기대감 없는 자유로움이 주는 선물입니다. 
   
   똑같은 것을 얻고도 덤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뭔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비에 젖은 낙엽이 땅바닥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빨리 치우지 않아 거리를 지저분하게 방치한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깊고 무겁게 내려앉은 가을 한자락을 덤으로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최소한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깨에 힘을 빼고 넉넉하고 느리게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겁니다.
   기대감을 조금만 낮추면 신경 쓸 일이 적어집니다.
   덤이 생기기도 합니다.
   편합니다.      
   그리고 자유롭습니다.

by 오늘하루 | 2009/11/08 16:18 | 짧은 얘기 | 트랙백 | 덧글(2)

제주도 일기(4) - 우도에서 생각합니다


   우도에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립니다.
   제주도에서 배로 약 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섬입니다.
   육지에 사는 사람은 낭만적인 관점에서 섬을 바라보지만
   섬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때로는 불편하고 
   벗어나고 싶은 환경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섬에 사는 사람이,
   특히 그 또는 그녀가 젊은 사람이면 갇혀 지내는 일상의 단조로움으로
   답답해 하는 모습이 많이 그려졌으니까요.
   이번이 첫번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왔기에 저는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우도로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인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행가서는 일상처럼 행동하고, 일상은 여행처럼 하라' 라구요.
   낯선 곳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사물에도 감정이 이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지가 아니라면 지나칠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어느 거리의 벤치는 무심하게 지나면서
   파리에서는 커피라도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듭니다.
   서울은 익숙하고 파리는 낯설기에 대수롭지 않은 경험도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익숙하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면 매일매일의 삶은 온갖 느낌으로 더 풍성해질겁니다.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보면 언제나 영화 <빠삐용>이 생각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탈출하자는 스티브맥퀸의 제의를 
   더스틴호프만이 거절하면서 두 남자가 이별하는 모습은 
   여느 영화 속 어떤 연인들의 이별 장면보다 훨씬 짜릿합니다.
   스티브맥퀸은 절벽을 때리는 파도의 갯수를 세고
   주기적으로 가장 약하게 파도가 치는 순간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코코넛인가...를 넣은 자루에 자신의 몸을 묶습니다.
   스티브맥퀸을 실은 자루는 점점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갑니다.
   그는 이제 자유입니다.
   바다를 보면서 좀 더 자유롭게 사는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항상 그렇듯이 대답은 무엇인가에 연연해 하지 않는 마음으로 귀결됩니다.

   우도에는 등대를 테마로 한 공원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유명 등대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등대에 비하면 규모가 크고 모양도 다양합니다.
   모형 중에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등대이면서 
   130m가 넘는 높이에 4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불빛이 보였다는 파로스 등대는
   어릴적 책에서 본 이후로 여전히 가슴 설레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입니다.

   이 곳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캐기 위해 걸음을 옮깁니다. 
   주위를 보니 돌 틈 사이에 쪼그려 앉아 손을 놀리는 아주머니들이 몇 분 더 보입니다. 
   저의 여행과 누군가의 일상이 하나의 공간에 있고.
   경치로서의 바다와 삶의 터전으로서의 바다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집니다.
   그리고 탈출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게 되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됩니다.
   
   앞서 얘기한 광고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와 관련된 문제일겁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결국 빠삐용도 파로스의 등대도,
   아주머니의 등에 걸린 바구니와 손에 든 갈고리도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by 오늘하루 | 2009/10/05 07:16 | 짧은 얘기 | 트랙백 | 덧글(0)

제주도 일기(3) - 한라산 1,950m



   아침 날씨는 좋았는데 올라갈수록 자꾸 흐려지더니
   정상에 거의 다다르는 시점에는 빗방울까지 뿌려댑니다.
   힘들게 올라가는데... 백록담을 잘 볼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일정 높이 이상부터는 나무도 없습니다.
   마치 평원 같은데 실제는 1,700m가 넘는 고지대입니다
   산을 오르다 어느 순간 나무가 사라지는 풍경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라산을 오르기는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몇 년 전에 올랐을 때 선택한 코스는
   정상 바로 아래까지만 허용된 코스였습니다.
   실컷 올라갔는데 백록담을 보지 못하고 내려와
   뭔가 핵심이 빠진듯 했는데,
   오늘 그 허전함을 채우게 됩니다.

   땅에서 올려다 보는 구름의 움직임은 아주 느릿느릿하지만
   가까이 있는 구름은 훨씬 날렵합니다.
   봉우리 한 구석을 휘감는듯 싶더니 순식간에 비껴 나갑니다.
   구름과 얇은 빗방울이 만드는 촉촉한 공기가 
   한라산 정상에 가득합니다.   
   한반도 허리 아래에서 가장 높은 1,950m 지점입니다. 
   오늘 운좋게도 분화구는 바싹 마르지 않고
   작은 물웅덩이를 담고 있습니다.
   이 정도도 상당히 괜찮은데 언젠가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본다면...
   지금 이 곳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조금 더 정상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하산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가늘었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집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렇게 내려가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라산은 그저 조금씩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출 뿐입니다.

by 오늘하루 | 2009/09/13 16:35 | 짧은 얘기 | 트랙백 | 덧글(0)

세상을 떠난 또 한 사람이 남긴 말...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된 헌법을 갖고 태어난 대한민국이지만  
   헌법에 버젓이 규정되어 있는 많은 권리와
   실제로 현실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당한 의견 표출 기회가 원천 봉쇄되기도 하며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법질서 훼손이라는 죄목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나 돈의 힘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법 적용에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조항은 조롱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기 위한 
   노력과 희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증진시켜야 하는 정치인보다
   보통의 우리 이웃의 노력과 희생이 더 많았다는 것은
   안타깝고 억울하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했습니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온전히 구현되지 않는 사회라면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과 희생이 불가피함을 
   그는 단 한 줄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 말을 접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그냥 양심만으로는 부족한 현실,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에 살면서
   스스로의 권리가 짓밟힐 때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우리 모두의 죄값인지도 모릅니다.

by 오늘하루 | 2009/09/01 20:23 | 짧은 얘기 | 트랙백 | 덧글(0)

제주도 일기(2) - 이 곳에 살 수는 없을까요?

   제주도를 처음 여행한다면 성산일출봉을 빠뜨릴 사람은 없을겁니다.
   사방으로 탁 트인 바다와 분화구가 어울린 장면은 
   한참을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빼어납니다.
   게다가 올라가는 과정도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계단으로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잠시 이 곳이 중국의 관광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방에서 중국말이 많이 들립니다.
   중국 여행객은 중장년층 외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도 많습니다.
   젊은 여자끼리 온 사람도 쏠쏠합니다.  
   중국의 소득수준이 더 높아지면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은 더 많아질겁니다.
   중국이 한국인의 지갑을 열어야 했던 상황이
   이제 우리가 그들의 지갑을 열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미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성산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지난번에는 비가 내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볼 여건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깨끗한 시야가 확보됩니다.
   태양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합니다. 
   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와 살갗을 휘감으며 빠져나갑니다.
   휴가임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내일은 한라산에 오릅니다.
   예전에 정상 출입을 통제해 바로 아래까지밖에 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백록담까지 보고 올 예정입니다.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이렇게 확 트인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을텐데요.

   제주도,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뭔가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살고 싶은 곳입니다.
   아... 일자리 외에 제주도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도 있으면 좋겠네요.
   

by 오늘하루 | 2009/08/24 09:08 | 짧은 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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